8 March 2026
February Fever
sura
하루가 어떻게 시작하고 끝나는지 알기 어려운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1년 전 박사 논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꽤 최근까지 이건 마라톤이니까, 그냥 또 하나의 일로 생각하고 일상을 지키는 방식으로 임해 왔다. 하지만 결승선이 가까워지는 지금은 잠시 그 끈을 내려놓고 달려 나갈 때.. 이런 모드에 접어들면 내 몸은 그 일 하나만을 위해 작동한다. 일을 하지 않을 때에 뇌를 사용하는 법은 없다. 일기를 쓰는 것도 사치. 존재 양식은 (살기 위해 먹고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일하거나, 아무 영양가 없는 영상을 보면서 침대에 누워 있기, 오직 이 두 가지로 나뉜다. 일기장은 비어 가고, 업무 시간이 올라가는 만큼, 아이러니하게 스크린 타임도 같이 올라간다. 남은 시간은 한 달.
글쓰기와 직업전선
그 와중에도 무슨 집착인지 아이폰 메모에 이것저것 써 둔 것이 보인다. 어느 날에는 이렇게 써 있다.
“처음으로 진짜 못 끝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 쓰는 자에게 이것은 아주 무서운 생각이다. 일 년 동안 무엇보다 페이스 유지에 열을 올렸던 것도 끝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 감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었다. 흔히 작가가 글의 주인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에서 작가는 글에 한없이 휘둘린다. 오늘 쓰려 했던 것을 쓸 수 있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일이 아닐 때가 많고 그날 아침 눈을 떠 보아야, 키보드 앞에 앉아 보아야 알 수 있다. 다행히, 며칠 뒤에 나는 다시 실마리를 찾았고, 저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이대로만 가면 안전히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겠다’ 싶은 상태에 있다.


유독 정신이 없었던 것은 논문을 쓰는 와중에 여러 번의 잡 인터뷰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온 마음을 다해서 연구 설명서와 커버레터를 썼던 교수직들은 감감무소식인 중에, 우연치 않게 발견하여 레쥬메만 달랑 냈던 리서처 포지션에서 연락이 왔고, 한 달 동안 두 번의 면접을 봤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었다. 매 인터뷰마다 A4 서너 장 분량의 준비 사항을 보내주고, 논문도 몇 편씩 읽어야했으며, 두번째 인터뷰에서는 연구 제안 발표도 했다. 준비하는 과정은 재미있었다. 매력적인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지방 정부가 겪는 실질적인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략을 고민하는 자리. 연구자로서 내가 무엇보다 하기를 바랐던 일이다. 당장 교수가 되는 것보다 내가 지향했던 학자의 모습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적 연구자인 내게 질적 연구 역량을 증명하라는 이들의 거듭된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이 복잡하다. 필요한 접근이라는 것은 알지만, 내가 5년간 쌓은 해석적 전통의 연구 역량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까?
흔들리는 세상
사실은, 잠시 그 전통에서 거리를 둔다는 것이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복잡한 마음의 핵심인지도 모르겠다. HCI/STS 학계에서 연구를 배우고 또 하면서 정말 즐거웠고 가능하면 이곳에서 계속 연구하고 싶기에 교수직도 대체로 i school로 지원한 거였다. 하지만 지원서를 쓰면서 동시에 기술 연구 커뮤니티에 내 연구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이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도 들기 시작했다. 사실 나를 진짜로 필요로 하는 곳은 행정/정책계가 맞는지도. 여전히 HCI 분야의 연구가 진짜 공적 시스템의 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기술 연구계에 공적 영역 현장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기술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움직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계획가 친구가 있었다. 기술인들이 뭣하러 정부 현장 일의 복잡함에 관심을 가지겠냐고. 그때는 그렇지 않다고 속으로 반박했지만 어쩌면 그의 말에 뼈가 있음을 좀 더 유념해야 할지도.
그 와중에 그놈의 AI 타령이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부추긴다. 요즘 내 주변에는 AI 어쩌구가 아닌 것이 없다. 학계의 주목은 죄다 이 AI 회사들이 일으킨/일으킬 사회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참여해야할지/대응해야할지 이야기하는 모임과 잡 톡과 수업들로 가득하고, 어찌됐든 나는 실리콘 밸리에서 AI를 만드는 사람을 속에 둘러쌓여있다. 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보는 AI 폭풍의 풍경은 세간의 모습과는 또 다르다. 당장 2, 3년 안에 자신의 직군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남편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과장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최근 점점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다. 흔들리는 허상 위에 너무 빠르게 지어지는 물질적 세계. 비판적 컴퓨팅 연구자로서 내내 배워왔던 원칙들이 또 다시, 더 빠르게, 그간의 생산적 비판을 아랑곳 않고 또 새로운, 아마도 살리거나 나누기 보다는 파괴나 독점의 모습이 더 흔할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고, 문득 다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밑도 끝도 없이 든다.


다만, 이럴 때를 조심해야 한다. 다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만큼 유혹적인 것도 없으니까. 이 폭풍에 흔들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쉬이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길이다. 나는 연구가 너무 재미있고, 여전히 그 안에 의미 있는 변화의 싹이 있다고 믿는다. 긴 박사 과정을 거쳐서 이제 막 연구자로서 활동을 시작할 시기가 왔는데, 시작해 보지도 않은 것에, 이렇다 할 실패도 없는 주제에 떠남을 논하는 것은 사실 우스운 일이다. 어쩌면, 진짜 일이 시작되려 하는 순간 앞에 두려움은 내 안에서 생겨난 것 일지도 모른다. 졸업 논문 쓰면서 자기 일에 더 희망차지는 박사생이 어디 있겠는가. 원래, 혼돈의 한 가운데 있을 때에는 너무 많은 것을 판단하려 하지 말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저 바라보며 흘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차피 폭풍 속에서 폭풍을 진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여하튼 이 속에서도 삶은 흘러갔고, 일찍 찾아오는 베이의 봄은 어떤 하루도 어둡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매일 달라지는 바람의 감각에 마음이 들뜨고, 무엇이든 좀 더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역시 봄이다. 무슨 바람인지 어느 오후에 나섰던 집 구경에서 인생 집이라 할 만한 집을 만났다. 현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이 갔고, 집 안 구석구석에서는 20년 동안 직접 살며 집을 돌본 집주인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직 집을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언젠가 내 집을 찾게 될 때에도 이렇게 마음에 들어오는 집을 고르면 되겠다는 내 감각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런 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인이 묘한 안정감을 주었다.
친구네에서 그 유명한 두쫀쿠도 직접 만들어 먹었다. 화면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을 직접 먹어봐서 속이 시원했고, 나중에 가게에서 파는 것과 비교해보니 내 것이 썩 나쁘지 않아서 더 흡족했다.